[떼인돈받기-10] 다른 사람이 명의를 도용해서
사기치는 것을 방치한 사람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법무법인 감우 변호사 김 계 환


 
 

 

 

 

 

 

 

<만화가 : 조정근>



  위 만화사례는 좀 황당해 보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고 필자가 직접 소송대리를 하기도 했던 사건을 각색한 것이다. 위 사례와 같이 채무자가 다른 사람 행세를 하거나 명의를 도용하여 거래를 하고는 돈을 떼먹고 잠적하는 사건이 실제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 경우 거래를 한 채무자는 잠적하여 찾기도 어렵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할 정도면 그의 명의로 된 재산이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 그를 상대로 소송을 해도 실익이 없을 때가 많다.

 

  이와 같이 채무자가 다른 사람 명의를 도용하거나 명의인 행세를 하면서 거래를 하는 바람에 그를 명의인인 것으로 믿고 거래한 채권자는 명의인을 상대로 돈을 받아낼 수는 없을까? 물론 명의인이 아무런 잘못이 없고, 채무자가 무단으로 명의를 도용한 경우라면 명의인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명의인이 채무자가 명의를 도용하기 용이하도록 원인을 제공하는 등 귀책사유가 있거나, 채무자로 하여금 자신의 명의를 사용하여 거래할 수 있도록 사전에 허락한 경우라면 명의자도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는 [떼인돈받기-9]에서 살펴본 것처럼, 명의자에게 상법 제24에 의한 명의대여자책임을 물을 수 있다.

 

  위 만화 사례의 경우 배재라의 친동생인 배돌려가 배재라에게 자신의 운전면허증까지 주면서 금융거래시 자신의 명의를 사용하라고 허락하기는 하였지만, 육류거래를 하는데 자신의 명의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은 하지 않았다. 따라서 상법 제24조에 기한 명의대여자책임을 묻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명의대여자가 자신의 명의사용을 허락하는 것에는 명시적인 허락뿐 아니라, 타인이 자신의 성명이나 상호를 사용하는 것을 알고도 이를 저지하지 않거나 묵인한 경우를 포함한다. 따라서 배돌려는 배재자가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명의로 육류거래를 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한 사실이 인정된다면, 명의대여자로서의 책임을 지게 된다. 그리고 배돌려와 배재라의 관계(친형제 사이) 등 정황을 고려하면, 배돌려가 명의사용을 묵인한 사실의 입증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실제로 필자가 수행했던 사건에서도 명의인인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동생을 사칭하여 거래한 형의 사기범행을 방치하였다는 정황이 어느 정도 입증되어 결국 임의조정을 통해 명의인으로부터 채무금의 일부를 변제받았다.

 

  명의자가 채무자로 하여금 거래를 하는데 자신의 명의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이를 입증하지 못한 경우도 마찬가지), 명의자를 상대로 민법 제760조에 기한 공동불법행위자로서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공동불법행위의 성립에는 공동불법행위자 상호간에 의사의 공통이나 공동의 인식이 필요하지 아니하고 객관적으로 각 그 행위에 관련공동성이 있으면 족하고 그 관련공동성이 있는 행위에 의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그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대법원 1998. 6. 12. 선고 9655631 판결). , 채무자의 사기범행에 명의자의 과실행위가 개입된 경우에도 공동불법행위가 성립될 수 있다. 따라서 반드시 명의자가 채무자와 사전에 공모하거나 채무자가 자신의 명의를 사용하는 것을 알았던 경우가 아니어도, 신분증과 도장을 타인에게 제공하는 등으로 채무자의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한 과실이 인정된다면, 명의자 역시 채무자와 공동불법행위가 성립되어, 채권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참조판례 : 대법원 1998. 11. 10. 선고 9820059 판결).

 

  채권자로서는 이와 같이 채무자가 다른 사람 명의로 거래한 사례에서 채무자가 자력이 없는 경우라면, 명의자가 명의를 대여해 준 경우인지(묵인한 경우도 포함), 명의를 도용당하였으나 명의도용을 용이하게 한 과실이 있는지 등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경우라면, 명의자에게 명의대여자책임 또는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고, 상당수의 경우는 실제로도 소송실익이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지레 포기하기 보다는 일단 변호사와 구체적인 상담을 해 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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